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나고야에 사는 고등학생 다자키 쓰쿠루에게는 다섯 손가락처럼 완벽한 '5인조 공동체'가 있었다.
아카, 아오, 쓰쿠루는 남자, 구로와 시로는 여자다.
남녀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커플이 일어날 낌새는 없었다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이 공동체에 남녀 관계를 개입시키자 않는다는 암묵적 룰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부자연스러운 규칙이다.
고등학생들이 조화로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를 이성으로 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억누른 것이다.
아오도, 구로도, 쓰쿠루도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야 밝혀진다.
쓰쿠루의 억눌린 마음은 그의 꿈, 곧 무의식으로 나타났다.
시로와 구로가 등장하는 꿈을 처음 꾼 것은 쓰쿠루가 대학교 2학년일 때 공동체에서 소외된 직후다.
고등학생 쓰쿠루는 네 친구의 이름에 '색채'를 의미하는 한자가 있는데 자신에게만 없어서 아쉬움을 느꼈다. 자기는 친구들과 달리 개성이 없고 텅 빈 존재라고 생각했다.
쓰쿠루는 공동체 친구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철도역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역 건축에서 최고라고 알려진 교수가 있는 도쿄의 한 대학으로 진학했다.
쓰쿠루는 때때로 공동체에서 방출될까 봐 걱정했지만, 사실 먼저 떠난 사람은 쓰쿠루다.
친구들이 대학 진로를 물었을 때, 도쿄에 가기로 마음을 정했으면서 친구들에게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속인 것도 쓰쿠루다.
쓰쿠루가 대학교 2학년일 때, 친구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를 공동체에서 방출시켰다.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고향에 올 때마다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었던 공동체에서
'거절감'을 경험한 쓰쿠루는 5개월간 죽음만 생각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이 사람은 또다른 다자키 쓰쿠루라고 생각한 날,
쓰쿠루는 어떤 여성을 갈구하는 꿈을 꾼다.
꿈 속의 여성은 육체와 마음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 그때 쓰쿠루는 처음으로 질투라는 감정을 느낀다.
질투란,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감옥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인이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힘으로 제압하여 집어 넣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거기에 들어가 안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철창 바깥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가 그곳에 유폐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물론 나가려고 자기가 결심만 한다면 거기서 나올 수 있다. 감옥은 그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결심이 서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돌벽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것이야말로 질투의 본질인 것이다.
이 꿈을 꾼 뒤로 쓰쿠루는 죽음만 생각하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 적절한 식사와 운동을 시작한다.
쓰쿠루를 살린 것은 꿈 속에서 느낀 질투의 감정이었다.
20대 때 쓰쿠루에게는 하이다라는 연하의 친구가 생긴다.
잘생긴 외모에 소박한 옷차림을 한 하이다의 이름에도 '회색'이라는 색채가 있다.
그의 목에는 칼로 그은 듯한 깊은 상흔이 있다.
철학책이나 고전을 읽고 음악을 좋아하는 하이다는 쓰쿠루에게 지적 자극을 준다.
요리도 해주고 커피도 끓여준다.
쓰쿠루는 하이다가 음악을 듣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집을 제공한다.
그렇다. 쓰쿠루는 부유하다.
나고야의 5인조 모두 유복한 집 출신이었는데 그중 쓰쿠루의 집이 가장 잘 산다고 했다.
아버지는 벤츠만 탔고 3년마다 최신 모델로 바꿨고 늘 운전사가 있었다.
경제적 넉넉함에 대한 쓰쿠루의 태도는 약간 킹받는다.
“우리 집이 부자인지 아닌지 솔직히 난 아무것도 몰라...
현재 그리 곤궁한 것 같진 않아. 그러니까 이런 데서 살 수도 있고. 고마운 일이지 뭐.”
커피콩에 집작할 정도로 가난했던 하이다는 쓰쿠루의 이런 말과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고 싶은 게 없다던 하이다는 '역'이라는 한정된 관심을 가질 대상을 발견하는 대단한 성취를 이룬 쓰쿠루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중에 쓰쿠루는 자신이 하이다에게 상처를 줬고, 하이다는 부서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이다가 부서지기 전,
어느 날 두 사람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하이다가 들려주는 아버지 하이다와 미도리카와의 이야기는 뭔가 예언적이다.
온천에서 잡일을 하던 하이다(아버지)와 손님 미도리카와는
'논리적이지 않은 상황을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실증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이 이야기는 쓰쿠루에 대한 시로의 증언에 아카, 아오, 구로가 보인 반응과 연결된다.
시로의 이야기에는 어딘가 '믿을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고, 세 친구 모두 말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시로의 말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했다.
시로가 너무 아파보였고, 쓰쿠루는 혼자 도쿄에 있고, 또 쓰쿠루는 정신적으로 강하니 결국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세 사람은 그 선택 때문에 쓰쿠루가 죽음 직전까지 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16년을 살았다.
미도리카와는 하이다(아버지)에게 자신이 한 달 뒤에 죽는다고 말했다.
나중에 아키가 쓰쿠루에게 “시로는 육체적으로 살해되기 전에 어떤 의미에서 생명을 빼앗긴 상태”였다고 말할 때 나는 미도리카와가 떠올랐다.
한 달 뒤에 자기가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살아있지만 생명을 빼앗긴 상태인 것이니까.
미도리카와도 시로도, 피아노를 치기도 하고... 공통점이 확실히 있다.
그날 미도리카와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연주하기 전에 피아노 위에 주머니를 올려두었다.
무엇이 들어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미도리카와는 그것이 자신의 분신이라고 했다.
이 주머니 속의 물건은 장년이 된 쓰쿠루가 역 사찰 중 '여섯 번째 손가락' 이야기를 들을 때 다시 언급된다.
이날 후배인 사카모토(전설적인 음악가 사카모토의 이름을 쓴 것도 우연이 아닐 것)는 '사람에게 다섯 손가락이 가장 효율적'이라며, 여섯 손가락은 피아니스트에게도 방해가 된다고 한다.
사실 주머니 속에 여섯번째 손가락이 들어있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걸 믿든 믿지 않든,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중요한 것은 다섯 손가락이 완전하다는 것이다.
쓰쿠루가 고등학생 때 속했던 5인조의 완벽한 조화를 연상시킨다.
하이다(쓰쿠루의 친구)가 이 이야기를 해준 날 밤, 쓰쿠루는 꿈인지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경험을 한다
자고 있는 자신을 정지 상태로 바라보고 있는 하이다를 본 것이다. 쓰쿠루는 꿈쩍도 하지 못한다. 하이다는 쓰쿠루를 주시하다가 가버린다.
그리고 구루, 시로가 등장하는 꿈을 꾸는 데 이번에는 하이다도 등장한다.
생생한 꿈이었지만 눈을 떴을 때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고, 하이다도 평소와 같았다.
얼마 후 하이다가 사라졌을 때, 쓰쿠루는 자기는 하이다에게 받기만 하고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자신에게는 남에게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자신은 혼자 남겨질 운명이라고 결론 짓는다.
고등학생 때 자기는 색채가 없는 '텅 빈 존재'라고 생각한 것과 같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도, 이번에 읽을 때도
다자키 쓰쿠루라는 주인공이 비호감이라고 느꼈는데,
자꾸만 자신을 이렇게 매력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해서 그런 것 같다.
나중에 아오가 “쓰쿠루는 늘 호감을 느끼게 하는 핸섬 보이야. 청결하고 반듯하고 예의 바르고. 인사성 밝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아. 지각도 하지 않아. 어머니들이 좋아하는 집안 좋은 도련님이야.”라고 말했을 때,
뭐야, 쓰쿠루 '국민 사윗감'이었어? 하고 놀랐다.
아오도, 구로도, '쓰쿠루는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는 데, 왜 정작 쓰쿠루는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가 다 그런 걸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보는 나는 이렇게나 다를까?
아무튼 하이다가 영영 떠났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쓰쿠루는 4살 연상의 약혼자가 있는 여성을 8개월갈 만난다.
이 여성이 쓰쿠루의 첫 여자다.
(쓰쿠루가 만나는 남성 친구는 연하이고 여성은 연상인 설정은 무슨 이유일까? 갑자기 궁금)
현재 쓰쿠루는 36살이다. 철도 회사에서 근무한다.
2살 연상의 여성 사라를 만나고 있다.
사라는 매력적인 외모에 세련된 옷을 입는 커리어 우먼이다.
사라는 쓰쿠루의 고등학교 친구들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그가 추방당해야 했던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를 묻어버렸다는 쓰쿠루의 말에 그건 “위험하다”며,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같이 자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상처 입은 소년이 아닌(아마도 그런 애랑 자고 싶지 않았을지도) 자립한 성인으로서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한다.
결국 쓰쿠루는 사라의 말에 동의하고, 사라는 쓰쿠루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친구들에 대해 조사한다.
그리고 세 사람의 근황과 시로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조사를 마친 사라는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자신의 고등학생 때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고등학생 때 핸드볼 부였다는 둥, 친했던 친구 두 명과 연락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게다가 쓰쿠루의 집에도 가겠다고 하고.
부잣집 도련님이었던 쓰쿠루는 주어진 게 많았기 때문에 진짜로 원하는 것을 고생해서 얻는 기쁨을 몰랐다.
그런 쓰쿠루가 점점 강하게 사라를 갈구하기 시작하는 데, 이 흐름을 방해하는 뭔가가 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쓰쿠루는 사라가 어떤 중년 남성과 걸어가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다.
사라가 다른 남자와 잘 수 있다는 것보다 자신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즐거운 표정을 다른 남자에게 지어보였다는 점에 아파한다.
... 어쨌든 쓰쿠루는 친구들을 방문하는 순례를 떠났다.
이 순례에서 쓰쿠루는 자신이 공동체에서 추방된 충격적인 이유를 알게 된다.
그리고 친구였던 이들과의 관계가 정리된다.
아오 “뒤로 돌아갈 수 없어”
쓰쿠루 '둘 사이에 나누어야 할 소중한 것이 더는 없다'
아카 “너는 이제 별로 나를 좋아하지 않겠지?” “다시는 널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쓰쿠루 '아카에 대해 좋다 싫다 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
“이제 와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야”
쓰쿠루 '구로를 다시 만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핀란드에서 돌아온 쓰쿠루는 순례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로의 응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에게 부재중 메시지 하나 조차 남기지 못한다. ㅠㅠ
나중에 사라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겨우겨우,
그냥 느낌이라며 자기 말고 달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날 밤, 피아노 소나타를 치는 꿈을 꾼다.
본인은 훌륭한 연주라고 생각하지만 청중의 반응은 나쁘다.
여섯 개의 손가락을 가진 여인이 악보를 넘기고 있다.
꿈에서 깬 그는 사라한테 한 말을 후회하고, 구로와의 기억을 회상하고, 구로의 말을 떠올리고, 새벽 4시에 갑자기 사라에게 전화를 한다.
설마 '...자니?''를 시전하는 건가, 그런 거라면 하지마... 제발 새벽 감성에 용기 얻지마... 라고 생각했다.
사라도 쓰쿠루가 취했는지 확인하더라...
그런데 쓰쿠루는 다음 날 사라에게서 온 전화를 받지 않는다. 두 번이나.
그러면서 사라가 수요일에 자신을 선택하면 결혼하고, 다른 사람을 선택하면 죽겠다니...
어쩌면 10대 때 쓰쿠루는 친구들의 증언처럼 정말로 준수한 외모에 성실하고 깔끔한 좋은 집안의 도련님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20대 때 겪은 거절감 때문에 '누군가가 날 떠날 수 있다'는 두려움 항상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30대 후반인 지금, 친구 순방을 마친 후에도 그에게는 아직 그 상흔이 있는 것 같다.
사라 누나는 과연 자신을 활짝 웃게 만든 중년의 남성과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괜찮은 사람이야'를 계속 일깨워줘야 하는 연하의 남성 중 누굴 선택했을까?
어떤 선택을 했든 그 선택은 얼마나 오래 갔을까.
이 소설을 두 번째로 읽으면서 이 이야기를 영화화하면 어떨까 궁금해졌다.
클래식, 재즈부터 엘비스의 노래까지 음악이 나오는 부분이 많아서 음악과 함께 연출된 장면은 어떨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