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중국의 소설가 위화가 2009년에 인민(人民), 영수(領袖), 독서(閱讀-열독), 글쓰기(寫作-사작), 루쉰(魯迅), 차이(差距-차거), 혁명(革命), 풀뿌리(草根-초근), 산채(山寨), 홀유(忽悠)의 10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들려주는 중국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키워드에서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은 빠지지 않는다. 현대 중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과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의 진짜 키워드는 '중국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마오쩌둥과 중국 사람들, 문화대혁명과 중국 사람들, 독서와 중국 사람들, 풀뿌리와 중국 사람들, 홀유와 중국 사람들...
이 책은 위화가 10가지 키워드로 들려주는 중국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인민> 챕터에서 중국 사람들은 '상방자(하급 정부를 불신하고 상급 정부를 신뢰하는 사람)'와
'사법난민(법관의 공정한 판결을 기대했지만 사법의 부패에 절망한 사람들)'으로 표현된다.
청렴한 관료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으나 결국 헛된 환상일 뿐이었음을 알게 된 사람들,
그러나 어떻게든 빛보다 먼 곳까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곧 인민, 중국 사람들이다.
<영수> 챕터에서 중국 사람들은 마오쩌둥을 신격화하고, 일종의 덕질을 한다.
찐(?) 덕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음으로부터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세뇌된 활동이라는 점이다.
<독서> 챕터에서 중국 사람들은 마오쩌둥과 관련이 없거나 마오쩌둥에 반대되는 책이 금지된 사회에서 지식과 사상을 통제당한다.
이 챕터에 나오는 위화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들이 무척 재미있다.
그중 하나는 책 오픈런 이야기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외국 문학 작품 물량이 '한정 수량'으로 풀렸을 때, 사람들은 전날부터 서점 앞에서 밤을 새며 줄을 섰다. 책을 구한 사람은 뿌듯하게 자랑하고 책을 못 구한 사람은 아쉬워하며 좌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그때뿐인 이야기. 이제는 책을 폐지 처리하듯 묶어서 싸게 내놓으며, 그마저도 팔리지 않는다.
책이 팔리지 않는 건 한국도 마찬가지. 책을 '한정 수량'과 '오픈런'으로 마케팅해야 하는 걸까?
<글쓰기> 챕터는 웃긴 에피소드가 많다. 그 시절 중국에서는 '대자보'가 SNS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특히 죄를 따지고 주장하는 '검사'만 있고, '변호사'와 '상소'는 없이 마녀사냥이 이루어지는 꼴은 요즘의 온라인 마녀사냥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위화가 밝히는 글쓰기의 효과(?):
누구나 일생을 통틀어 표현하고 싶은 무수한 욕망과 감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실제 현실과 개인의 이성과 지혜가 이를 억누르고 만다. 하지만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이렇게 억압된 욕망과 감정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가 사람의 심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인생을 더욱더 완전하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또는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두 갈래 인생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할 수도 있다. 하나는 현실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허구의 길이다. 이 두 가지 길은 건강과 질병의 관계와 같아서 하나가 강대해지면 다른 하나가 필연적으로 쇠약해진다. 내 현실에서의 삶의 길이 갈수록 평범해지는 것은 허구에서의 내 삶의 길이 갈수록 풍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쉰> 챕터도 흥미롭게 읽었다.
루쉰의 작품은 그대로 있을 뿐인데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엄청난 권위를 갖게 되고, 문화대혁명 후에는 자리만 차지하는 장식품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10대 위화에게는 어둡고 무료하게 느껴졌던 루쉰의 책이 30대 위화에게는 날카로우면서 맑고 밝은 글로 느껴졌다는 것.
결국 변한 것은 루쉰의 작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차이> 챕터에서도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혹은 '그때는 맞고 지금을 틀린'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공허한 사상의 시대'였던 문화대혁명 시기와 '복잡하고 실제적인' 현재가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특히 빈부격차와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사회생활의 불균형은 꿈의 불균형을 가져온다'는 문장이 슬펐다.
극단적으로 억압된 시대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반드시 극단적으로 방종하는 시대를 조성한다.
<혁명> 챕터는 야만적이고 강제적으로 이룬 혁명과 성장이 일으키는 무질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까짓...기이한 힘을 가진 직인을 탈취하기 위해 중국 사람들이 일으킨 소동과 폭동들이 모두 진실이라는 게 소름 돋는다.
<풀뿌리> 챕터에서는 일반 대중인 풀뿌리가 급격한 신분 상승을 이루거나 급격하게 추락하는 이야기다. 중국 사람들의 과감한 생각과 과감한 행동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다.
마지막 두 챕터, <산채>와 <홀유>는 가짜에 대한 이야기다.
산채는 짝퉁의 새로운 이름으로, '괜찮은 짝퉁'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홀유는 속임수의 새로운 이름으로, '허용되는 속임수'라는 의미를 가진다.
두 단어 모두 명백한 잘못을 유머로 덮어버리기 때문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위화는 이 현상을 '윤리 및 도덕성 결여와 가치관의 혼란'이라고 설명한다.
위화가 용감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머리에서는 천안문 사건이 일어난 '6월 4일'을 '5월 35일'이라고 표현하듯 검열에 걸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쓸 것처럼 말해놓고... 뒤로 갈수록 중국, 중국 정부, 중국 사람들의 못난 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해외에서 인정받고, 중국에서도 권위와 짬바가 있는 작가이지만, 중국 정부나 중국 사람들은 그런 거 안 봐주고 괴롭힐 것 같으니까...
이 책이 여러 국가에서 여러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음에도 위화가 지금까지 잘 살아있는 건, 결국 자기 나라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애초부터 이런 책을 내지도 않았을 거라는 게, 쉽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쳐오면서 위화 자신도 혁명가와 반혁명분자 사이를 오갔고, 때로는 비윤리적이고 어리석었다. 그가 지적하는 대상에는 자신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온 지도 벌써 십여 년이 지났다.
과연 위화가 지금의 중국과 중국 사람들은 어떤 단어로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