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 요코야마 히데오
(이 작품에서 건축하는 이들을 모두 '건축사'로, 그중 인정받는 대가를 '건축가'로 구분하고 있다)
주인공 아오세는 건축사로, 8년 전 유카리와 이혼해 혼자 산다. 딸 히나코는 유카리와 살고 한 달에 한 번 아오세와 단둘이 만난다.
아오세와 유카리가 이혼한 이유와 관련해 '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두 사람은 꿈꾸던 집이 서로 달랐다. 유카리는 '목조 주택'을 원했고 아오세는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외벽의 표정이 변하는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을 원했다.
인간이 집에 가진 고집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과 숨겨진 욕구과 드러난다. 그것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어느 날 아오세에게 '요시노 부부'가 찾아와 3천만 엔을 주며 시나노오이와케에 집을 지어달라고 한다. 요구 사항은 단 하나 “아오세,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아오세는 자신이 꿈꾸던 집, Y주택의 설계를 완성한다. Y주택은 <헤이세이 주택 200선>에 소개되는 등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Y주택 같은 집을 지어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걸작이었다.
Y주택은 거품경제 붕괴와 이혼 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살고 있던 아오세를 건축사에서 건축가로 발전시켰고, 동시에 아오세라는 사람을 '살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사람과 다시 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었다. 속세를 버렸다는 환상에서 깨어났고, 체념과 달관의 자승자박에서도 해방되었다. Y주택을 지었기 때문이다. Y주택을 마음에 다시 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오세는 한 의뢰인을 통해 요시노 가족이 Y주택에 살지 않으며 그 집에 아예 입주한 적도 없고 Y주택은 완공된 날부터 지금까지 비어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시노에게 연락을 해보지만, 이전 주소에서도 요시노 일가를 찾을 수 없다.
아오세의 '요시노 찾기' 여정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Y주택에 있는 유일한 요시노의 흔적인 의자가 '타우트'와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타우트는 독일의 건축가로, 히틀러를 피해 일본에 망명한 뒤 당시 일본인들도 인정하지 않았던 '일본의 美'를 재발견한 사람이다.
일본 사람들, 특히 일본 건축사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타우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을 깨달은 아오세는 타우트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타우트에게는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던 동반자 에리카가 있었다. 아오세는 타우트와 에리카의 관계에서 자신과 유카리의 모습을 떠올린다.
유카리에게 절망한 건 아니었다. 자신에게도 절망하지 않았다. 공간에 절망한 것이다. 유카리와 쌓아 올린 공간이 붕괴했다는 사실에 아오세는 절망했다.
만일 집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면, 건축가는 신도, 악마도 될 수 있으리라.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건 인간이라는 사실을, 센신테이가, 그 소박한 공간이 가르쳐주었는지도 모른다.
아오세가 요시노를 찾고, 타우트를 발견하고, 요시노와 타우트의 관계를 밝히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소설에는 또 하나의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오카지마는 아오세가 일하는 건축사무소의 소장이자 아오세의 오랜 친구다. 그는 대학을 중퇴한 아오세를 살짝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아오세가 완성한 Y주택에서 '노스라이트'가 들어오는 북향 창을 한참 바라보면서도 아오세에게는 Y주택을 칭찬하거나 인정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카지마 사무소는 S시 건설부에서 주최하는 '후지미야 하루코 기념관 공모전'의 지명 업체로 선정된다. 후지미야 하루코는 파리의 길거리에서 그립엽서를 팔며 생계를 이어간 화가다. 후지미야가 살아있는 동안 그녀의 그림 800여 점은 세상 빛을 보지 못했다. 후지미야의 유족을 만나고 온 오카지마는 평가에도, 돈에도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그림을 그린 후지미야야 말로 진정한 예술가라며 공모전에 대한 진심을 보인다.
겨우 직원 5명으로 구성된 오카지마 사무소가 큰 규모의 기념관 사업 공모전에 참여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오카지마가 S시 의원들에게 행한 '무리'한 공작이 있었다. 결국 정치와 언론이 관계되면서 오카지마는 병원에 도피성 입원을 한다.
이제 소설은 후반부로 달려간다.
아오세에게 Y주택을 의뢰했던 요시노의 정체, 요시노와 아오세와의 관계, 유카리가 말하지 않은 것, 타우트가 개축한 휴가 별장의 지하 공간, 오카지마의 비밀, 오카지마의 스케치 등등 앞에서 던진 떡밥들이 수거되며 미스터리가 풀어진다.
Y주택, 타우트가 살았던 센신테이, 휴가 별장, 파리에서 후지미야 하루코가 살았던 집, 기념관 등 공간을 상상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아쉬운 건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밋밋해서 매력이 없다는 점. 장편 소설인데 거의 모든 인물이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고 개성도 없어서 흥미로운 스토리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한다.
다른 나라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이해되지 않는 정서(예를 들어, 타우트의 제자였던 야마시타 노인이 요시노 일가 묘에서 오열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노스라이트'.
니시지마 히데토시, 키타무라 카즈키 주연
(내가 상상했던 주택, 의자랑 전혀 달라서 또 재밌음 ㅋㅋㅋ)
https://www.youtube.com/watch?v=YgQIjybEk_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