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보고) 의붓자식 - 100년 만의 초대
가장 편안해야 할 침상이 관(棺)의 형태로 되어 있다.
그곳에서 꾸는 꿈은 막혀있고 현실이 되지 못한다.
성실(=탄실=김명순)이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없고
주체적인 사랑을 할 수 없고
있을 곳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조선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아버지의 반대를 거스른다는 것은 죽을죄였다.
성실이 꿈도 사랑도 포기하며
자신을 무능력자요 제삼자라고 하는 장면은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하다.
마지막 장 '정사(情死: 사랑의 죽음, 뜻의 죽음, 본성의 죽음, 진심의 죽음)'는 어쩌면 예견되었던 결말이다.
연극을 보면 생각나는 김명순의 말...
- 왜? 살아가려느냐.
- 무엇 때문에 악착하게 살려고 하루걸러 의사의 신세를 입으며 애쓰느냐.
- 불더미 속에 든 무엇과 같이 너를 둘러싼 것은 다 악(惡)이요 너를 지키는 것은 모두 불의(不義)다. 그 속에 젊은 생명으로 시달리는 네 마음이 얼마나 그것을 벗어나고 싶으랴.
- 가련한 생명은 한 번도 복종하지 못한 감방 속에서 오래 부자유하였고 꿈에도 낯익어지지 않은 불의 속에 매인 포로였었다.
- 노력은 컸으나 공은 없었고 오래 살려고 하면 할수록 죽게 되는 생활, 그것은 온전히 너의 것이다.
김명순 에세이 <사랑은 무한대이외다> 21~22p
이 연극이 더욱 와닿는 데에는
관객과 배우의 가까운 거리도 한몫하는 듯하다.
무대 위에 객석이 있다. 연극이 펼쳐지는 원형의 공간을 좌석이 둘러싸고 있다.
배우가 내 코앞에서 말하고 외치고 울고 숨을 쉰다.
연극을 보는 게 아니라 성실과 탄실이 내 앞에서 호소한다는 느낌이다.
이날 배우 김혜수 님도 연극을 보러 왔는데, 혹시 그분도 김명순을 좋아하는지? 혼자 친밀감 생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