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지 않은 땅 - 줌파라히리
읽으면서 느낀 점.
1. 우리는 같이 살았던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가족이 된다.
2. 부모도 자식을 모르지만 자식은 부모를 더 모른다.
3. 나중에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No No... 영원히 모른다.
인도계 미국인 루마는 원래 변호사지만, 남편 아담의 직장을 따라 지인이 없는 시애틀로 이사했다. 세 살배기 아들 아카시를 키우고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며, 일을 쉬고 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루마의 집에서 며칠간 지내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마침 아담의 출장 기간이다.
루마가 시애틀로 이사 온 후, 루마의 어머니가 죽은 후, 아버지가 루마 어머니와 살던 집을 팔고 소형 아파트로 이사한 후, 처음으로 아버지가 루마의 집에 오는 것이다.
루마, 루마의 아들 아카시, 루마의 아버지 세 사람이 함께 지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루마는 장녀로서 아버지를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남편은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지만 눈치는 보인다. 또 아카시나 앞으로 태어날 둘째를 돌보면서 아버지까지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같이 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어머니라면 육아나 살림에 도움이 되겠지만, 하고 생각했다.
막상 아버지와 지내는 동안 루마의 부담은 더 커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설거지에 부지런했고, 아카시를 데리고 외출하거나 정원을 가꾸기도 했고, 밤에는 책을 읽어주며 아카시를 재웠다. 덕분에 루마는 아버지가 계신 동안 설거지를 하지 않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루마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는 애초부터 루마의 집에서 살 생각이 없었다. 패키지 투어에서 만난 박치 부인과 다음 프라하 여행에서 만나기로 했고 심지어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복잡함과 불화, 서로에게 가하는 요구, 그 에너지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딸 인생의 주변에서, 그 애 결혼 생활의 그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소설은 비슷한 시간대 혹은 장면을 루마의 입장에서 한 번, 아버지의 입장에서 한 번 번갈아 보여준다.
루마가 아버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데, 사실 아버지는 그런 게 아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루마는 아버지가 정원을 가꾸자, 자기 집에 관심을 가져주는 게 기뻤다.
사실 아버지는 루마의 집에 관심이 생긴 게 아니다. 그는 예전에 살던 집의 정원을 그리워했고, 그 정원을 그리워하면 죽은 아내 생각이 간절했다.
자식은 부모를 나를 키워주고, 내가 떠나오고, 마지막엔 내가 돌봐야 할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 자식의 자식도, 그 자식의 자식의 자식도...
하지만 아버지 혹은 어머니 역시 그냥 삶을 사는 사람이다. 작가는 삶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람은 몇 년이고 살다가, 생각하고 숨 쉬고 먹으며, 수백 가지 걱정과 감정과 생각을 지니고, 이 세상에서 조그만 공간을 차지하고 살다가 한순간 존재를 그치고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죽은 어머니와 새로 태어난 생명(또는 태어날 생명)은 루마에게, 또 루마의 아버지에게 각각 다른 의미와 영향을 준다.
루마는 아버지가 자기처럼 생각하지 않아 서운해 하고, 아버지는 루마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씁쓸해 한다.
권여선 작가의 <모르는 영역>이 생각난다. 아버지의 마음은, 딸의 마음은 정말로 '모르는 영역'이다.
루마의 집을 방문한 아버지는 올 때 선물을 가져왔지만, 갈 때는 가져가는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