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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 다와다 요코

최사막 2023. 12. 27. 20:22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이다. 

모든 게 모호하다.  

 

일본어가 모국어인 저자는 독일에서 독일어를 사용하고 두 언어로 글을 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까지가 독일이고 어디까지가 일본인가', '너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을 수도 없이 하다 보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규정, 정의, 경계, 구분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인공은 자기를 사진 모델이라고 하다가, 다음에는 통역사라고 한다. 

통역일을 할 때 등장한 식사 메뉴인 생선은 눈과 혀가 없다. 

통역하면서 일본인들과 독일인들의 우스운 모습을 못 본 체하고,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바로 생선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지하실에 사는 화장실 청소부이기도 하다. 

청소부에게는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난 그녀가 주인공의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 모두 곰(=쿠마)이라는 이름의 쥐를 키우는 건 둘이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피부 속 3분의 1은 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청소부의 피부는 3분의 1이 화상을 입었다. 

나는 주인공의 영혼이 그만큼의 상처를 입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청소부가 적포도주와 빵을 주인공에게 나눠주는 장면은 성찬식을 떠오르게 하고, 

그 행위에는 '하나가 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한 사람이다. 

 

주인공은 이제 자신을 타이피스트라 하고 마지막에는 투명한 관이 된다. 

 

주인공의 정체성만 바뀌는 게 아니다.

 

주인공이 사랑한 독일인 남자 크산더는 사진가다. 그는 주인공의 사진을 찍었다. 

크산더는 독일어 선생이기도 해서 주인공에게 언어를 가르쳐주었다. (주인공은 말을 가르쳐준 사람에게 그 자리에서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목수인 크산더가 주인공에게 관을 짜준다. 

 

나도 너도 자꾸만 바뀐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고, 지금의 너와 잠시 후의 너는 다른 사람이다. 

 

 

나는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하는 두 가지 행동(피부 위로 화장을 하는 것과 화장을 지워 피부를 투명하게 만드는 행동)에서 어디까지가 육체이고 어디까지가 영혼인가, 육체가 나인가 영혼이 나인가, 내 육체와 영혼은 모두 일본 사람인가, 내 육체는 독일에 있는데 영혼은 일본에 있는가 등을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하는 작가의 모습이 보였다. 

 

현실과 꿈과 환상이 뒤섞여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이 소설에서, 

독일, 일본, 세상 어디서나 이방인인 듯 이방인이 아닌 듯, 눈과 입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작가를 떠올렸다. 

 

 

 

 

제목에 대한 아쉬움

 

한국어판 제목은 목욕탕인데, 원문(독일어) 제목 Das Bad는 '욕실', '욕조'에 가깝다. 주인공은 욕실에서 등장하고 욕조에 눕기도 하니까 '욕실'이나 '욕조'라는 제목이 더 어울렸을 것 같다. 한국어로 목욕탕이라고 하면 대중목욕탕이 연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