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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 다이어리: 나에게 말하지 않는 단어들 - 베로니크 풀랭

최사막 2024. 7. 23. 16:41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난 것이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듯,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농인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다. 그리고 베로니크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농인 부모 밑에서 청인으로 태어났다. CODA - Child Of Deaf Adults(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의 삶이 주어진 베로니크가 쓴 일기를 엮은 책이다.  

 

   감동, 신파, 눈물의 이야기가 예상됐지만, 전혀 아니었다. 웃기고 화나고 황당하다가 가끔 따뜻한 정도. 그건 작가가 일부러 감동적인 이야기를 배제했거나, 뭔가를 감추고 있거나, 감정이 메말라서가 아니라 진짜 재미있고 솔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창피하다, 화가 난다, 속상하다, 좌절스럽다... 어떤 기분이든 그대로 적는다. 자기 이야기뿐만 아니라 부모님, 사촌, 삼촌, 외숙모, 이웃, 친구 등 모든 등장인물의 행동과 말을 여과 없이 적는다. 

 

   숱하게 받았을 다른 사람의 시선과 오해, 몰이해에 대한 분노, 설득, 변명이 부질없다는 걸 어릴 때부터 습득한 게 아닐까. “그래, 나(우리) 이렇게 산다” 하고.  

 

   수어에는 은유, 관사, 동사 활용, 부사, 속담, 인용구, 암시적인 표현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직설적인 표현으로 성적인 대화를 하는 장면은 민망하면서도 웃기다. 특히 거침없이 표현하는 어머니. 부끄러움은 딸의 몫. 

 

   충격적이었던 건 농인인 아버지가 자식도 자기처럼 농인이길 바랐다는 부분이다. 자식이 영원히 자신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만 같은 소외감 같은 걸 느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마음을 베로니크가 이해하게 된 것 역시 부모와 자신은 평생 다를 것이며 서로 온전히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리라.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딸과, 그걸 보며 자신의 무능력을 느끼는 아버지...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다. 농인인 자신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피아노를 딸에게 선물한 것이다. 딸이 쉬지 않고 치는 피아노에 손을 얹고 진동을 느끼는 어머니. 누구보다도 딸의 연주를 듣고 싶지만 음악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베로니카는 자신의 일상이나 고민, 사소한 모든 것을 부모님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청인인 조부모님 댁에 가면 속사포로 수다를 떨었다고 한다. 청인인 조부모님 역시 농인인 자식과 할 수 없었던 대화를 청인인 손주를 통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진정한 벙어리는 나였다. 특히 애정이나 감정에 대해서는 잉여와 같았다. 내가 사랑한다고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존재는 내 아이들뿐이다. “우리는 그런 소리를 못 듣고 자라서 그래.”  에브(베로니크처럼 CODA인 사촌)는 끊임없이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