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고

128호실의 원고 - 카티 보니당

최사막 2024. 11. 12. 16:59

문학의 선순환을 보여주는 서간체 소설. 

 

[줄거리]

   중년의 워킹맘 안느 리즈는 여행지에서 묵은 호텔 128호실 협탁에서 소설의 원고를 발견한다. 소설 내용에 푹 빠져버린 그녀는 작가가 원고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편지와 함께 원고를 작가에게 보내준다. 작가인 실베스트르는 회신으로 원고가 30여 년 전에 잃어버린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가 완성하지 않은 소설의 후반부가 누군가에 의해 채워져 있고 끝부분에는 시가 적혀 있다. 

   이 원고의 열렬한 팬이자 호기심 많은 안느 리즈는 친구 마기와 함께 원고를 호텔에 갖다 놓은 사람(+ 후반부를 쓴 사람)을 찾기 시작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적으로 30여 년에 걸친 원고의 여정을 되짚어간다. 그리고 뜻밖의 인물들과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원고의 이동 경로

 

   원고를 읽은 사람 대부분은 원고 때문에 새로운 결심을 했거나 희망을 찾았고 그 기운을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혹은 자기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 원고를 이동시킨다. 우리가 좋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 후에 '한 줄 리뷰'라도 남기는 행위가 누군가에게 전파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이 원고는 독자뿐만 아니라 작가인 실베스트르의 삶도 바꾸어 놓는데(자신의 글을 되찾은 후에 삶의 의욕까지 되찾은 남자), 그의 삶이 바뀌는 건 바로 독자 때문이다. 소설이든 시든, 작가는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반대로 독자도 작가에게 영향을 반.드.시 미친다. 그게 우리가 문학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사실을 '원고의 여정'이라는 소재로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원고를 만난 덕분에 활력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이런 일들이 작가에게 자양분이 되고, 백지를 대면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걸까요? 모험에 끝에서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걸까요?  

 

   다 읽는 데 3시간 정도 걸렸다. 술술 읽혔다. 

 

   아쉬웠던 점은, 모든 등장인물의 서신 말투가 비슷하다는 거다. 실베스트르나 다비드(적어도 그의 첫 번째 편지)는 더 거친 말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오'체를 쓰든가. 안느 리즈도 첫 편지에는 요즘 쓰지 않는 단어를 쓰더니 나머지 편지에서는 평이한 단어를 쓰는 게, 일관성 없게 느껴진다. 

   편지마다 인물들의 특징이 드러났다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의문과 추측.  

   안느 리즈의 딸과 아들, 그녀의 공동경영자인 사촌과의 관계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데, 중간중간 언급되었던 남편의 이야기는 어디서부턴가 나오지 않는다. 사별이나 이혼의 극복, 젊은 시절 연인과의 재회, 인생의 중반기에 새로 시작되는 사랑은 비교적 중요하게 다루는 반면, 원고를 읽은 인물 중 유일하게 '온전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안느 리즈에게 남편은 그저 그녀의 열정과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로 사소하게 그려졌을 뿐이다. 안느 리즈는, 더 이상 설렘이 없는 남편과의 관계보다, 자기에게는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타인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이나 과거 연인과의 재회에 훨씬 관심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