뻬드로 빠라모 - 후안 룰포
얼마 전 인스타에서 소개글을 보고 궁금해져서 읽은 소설.
읽는 동안 신기한 체험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후안 쁘레시아도가 아버지를 찾으러 찾은 꼬말라에서 만난 사람들은 알고 보니 이미 죽은 자들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후안 쁘레시아도 역시 죽은 사람으로 나온다.
어떤 사람은 그가 꼬말라에 도착한 후에 죽었다고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죽은 상태로 꼬말라에 간 게 아닌가 싶다.
이 부분에서 그가 대문을 두드렸지만 허공을 두드리고 있었다는 게 힌트가 아닐까. 처음부터 마부 아분디오나 에두비헤스 부인과 교류할 수 있었던 것도 후안 쁘레시아도 역시 유령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다. 영화 <디아더스>에서 같은 공간이라도 산 사람의 세계가 망자의 세계와 구분되어 있는 것처럼.
이 소설에 나오는 죽은 자들은 천주교에서 말하는 '연옥'에 있는 것 같다. 망자인 후안 쁘레시아도와 망자인 도로떼아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 아주머니의 영혼은 어디 있을까요?
- 어느 영혼들처럼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자들을 찾아 떠돌고 있겠지.
천주교에 대해 잘 모르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 그 영혼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카톨릭 세계관이 바탕으로 깔려있다. '망자의 날'이 배경인 영화 <코코>가 떠오른다. “나는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미움을 샀는지 모른다”는 도로떼아 아주머니는 <코코>에서 자기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서 슬퍼한 망자를 연상시킨다.
후안 쁘레시아도가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를 만나지 못하고 그의 생전 이야기만 전해 듣는 건, 혹시 뻬드로 빠라모가 연옥에도 가지 못하고 바로 지옥에 갔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여자들을 임신시켰으면서 아이는 돌보지 않고, 가진 건 많으면서 베풀지 않았고, 꼬말라를 황폐하게 만들며 '음흉하고 폭력적이었던' 사람이었으니까. 뻬드로 빠라모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미겔 빠라모의 영혼도 후안 쁘레시아도와 마주치지 않는다. 이승을 떠돌 권리도 없는 인생을 살아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후안 쁘레시아도라고 하지만,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 어머니 돌로레스, 뻬드로 빠라모의 진짜 사랑인 수사나, 렌떼리아 신부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기도 한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 생전에 겪은 이야기.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도로떼아, 근친상간 남매, 뻬드로 빠라모의 또 다른 사생아 미겔 빠라모 등 인생이란 건 평범할 수가 없다.
멕시코 사람들의 이름과 지명이 어렵게 느껴지고, 느닷없이 시대와 장소가 바뀌기도 해서 주석이 아주아주 많은 도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