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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 - 조카 알하르티

최사막 2025. 1. 6. 14:14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부제가 <세 자매 이야기>라, 오만이라는 나라의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란 세 딸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이것은 세 자매의 어머니 살리마의 이야기이면서 아버지 아잔의 이야기이자, 첫째인 마야의 이야기이고, 마야의 남편 압둘라의 이야기면서 그의 아버지 거상 술레이만의 이야기, 술레이만의 노예 자리파의 이야기이고, 자리파의 어머니 앙카부타의 이야기이거나 자리파의 사돈 마수다의 이야기이고, 살리마의 둘째 딸 아스마 혹은 셋째 딸 칼라의 이야기, 혹은 마야와 압둘라의 딸 런던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인물이 소우주이고 이들의 궤도가 실타래처럼 마구 엉켜 대우주를 이루고 있다. 그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는 소설이다.

관계가 복잡하고 이름도 헷갈려서 책 앞쪽에 있는 가계도를 보면서 읽어야 한다. 너무 방대한 이야기라 줄거리 요약이 힘들다. <백 년의 고독>처럼.

 

소설의 시점(視點)은 전지적 작가 시점과 1인칭 주인공(압둘라) 시점을 오간다.

소설의 시점(時點)은 마야가 결혼을 해서 런던을 낳은 때로 시작하지만, 압둘라의 유년기로 돌아갔다가 갑자기 세 남매의 아버지가 된 때로 흐르고, 살리마, 자리파, 앙카부타의 등 아주 많은 인물의 과거로 여행하기도 한다. 

 

 

여성의 이야기와 여성 인물이 압도적으로 많고 여성의 힘이 느껴진다.

남성 인물 중에는 죽었거나 죽어가거나 아픈 사람이 많다. 살리마와 아잔의 아들들, 살리마의 남자 형제는 어릴 때 죽었고 딸들만 살았다. 마야와 압둘라의 막내아들 무하마드는 자폐증이다. 거상 술레이만은 생사를 오가다 죽는다. 나지야의 남동생도 아프다. 압둘라는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마르완은 자살했다. 이민자 이사와 그 아들들이 오만으로 귀향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그 딸 덕분이다. 떠나고, 바람을 피우고, 강간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남자들이 있다.

 

 

여성 인물들은 이렇다. 혼인을 준비하고 아기를 키우고 음식을 하는 여자들, 모여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기혼녀, 숨어 지내야 하는 미혼녀, 장신구와 접시를 자랑하는 여자들, 주술을 거는 여자들,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여자, 공부하고 운전하고 돈을 버는 여자, 아들이 아프자 공부를 포기하는 여자, 친정에서 도망간 여자, 미쳐가는 여자, 유부남을 홀리는 여자, 남편의 외도를 보고, 강간을 당하고, 매 맞는 여자가 있다.

 

 

소설은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모두 보여주지만 어느 한쪽이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마야, 아스마, 칼라는 같은 배경에서 자랐지만, 각자 다른 선택을 하며 시간이 흐른 후 살아가는 모습도 완전히 다르다.

 

'첫째 딸은 남동생을 키우기 위해 태어났다'라고 믿는 가부장적인 무슬림 사회에서 자란 첫째 마야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부모님이 맺어준 압둘라와 결혼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은 다르게 키울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딸의 이름을 기독교 나라의 도시 런던이라고 지었다. (종교 지도자 무에진의 아내가 본명 대신 '무에진의 아내'로만 불리는 것과 대조된다.)

그런데 막상 런던이 소작농의 아들이자 시인인 아마드와 결혼한다고 하자 핸드폰을 부술 정도로 화를 낸다. 신혼 때 다짐한 것처럼 공부를 시작했지만 막내 아들인 무하마드가 자폐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공부를 포기한다. 마야의 남편인 압둘라는 주식 투자 실패, 과거에서 이어진 트라우마, 마야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 어머니와 자리파와 고모의 이야기, 사업 등등 온갖 문제로 혼란한 상태다.

 

셋째인 칼라는 엄마가 권한 혼사를 거부하고 첫사랑인 나시르를 기다린다. 순애보. 아주 오랜 기다림 끝에 나시르와 결혼하지만 나시르는 다른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수시로 캐나다에 간다. 칼라가 홀로 낳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나시르는 한 참 뒤 힘이 다 빠진 후에 칼라에게 돌아온다. 그러나 평화롭게 살아가게 되자 그녀의 마음이 용서를 멈췄다. 이제 더는 과거를 참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제목인 '천체'는 딱 한 부분, 둘째 딸인 아스마와 그의 남편 칼리드의 관계를 설명할 때 나온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알게 된 아스마와 칼리드는 부모님이 원하는 절차대로 결혼을 했다. 아스마가 기대했던 '영혼의 반쪽'은 아니었지만 각자 '하나'로 살기 때문에 균형을 이루었다. 두 사람은 인내와 희생을 거쳐 자유롭게 자기만의 궤도를 돌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궤도의 충돌은 일시적인 것일 뿐, 결국 각자 자신의 궤도를 찾아 돌아간다.

 

그녀는 그 모두와 화해했다.

그 대가로 예술가인 남편은 아스마가 자신만의 독특한 별자리로서 독립적이고 완전한 하나의 천체라는 사실과 화해했다.

 

 

복잡한 인물 관계 속에서 이상적인 모습의 부부는 이 커플뿐이다.

 

오만, 중동과 무슬림 문화라는 낯선 세상의 이야기에서 깊은 울림을 느꼈다. 전설, 신화 같은 것을 읽은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또 하나의 교훈. 여자들은 시인(노래하는 시인 포함)을 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