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고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무라카미 하루키

최사막 2023. 2. 26. 22:06

일본 주간지 '앙앙'에 연재되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이다. 

위대한 소설가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있는, 엉뚱하고 귀여운 글이다. 

 

하루키는 올림픽(방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TV에서 일본 선수가 메달을 따는가 따지 않는가에만 집중하는 게 싫단다.

그치만 일본과 관계 없는 경기, 즉 이해 관계가 얽히지 않은 경기는 순수하게 즐기고 몰입할 수 있다고 했다.

나도 이런 면이 있어서 공감이 됐다.

국제 대회에서 우리나라 경기를 보면 어쩐지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겼을 때만 하이라이트를 보는 편이다. 

다른 나라끼리 하는 경기는 팝콘 각이네... 하며 보고. 이런 사람 많지 않나? 

 

또 다른 에피소드.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하루키가 소설 습작을 가지고 온 한 학생의 글에 대해

어떤 부분은 칭찬하고, 어떤 부분은 비판했을 때

학생은 '다른 여교수는 하루키가 칭찬한 부분을 비판하고, 하루키가 비판한 부분을 칭찬했다'며 난감해 했다. 

하루키는 창작이란 그런 것이란다. 읽는 상대에 따라 해석도 감상도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서 <위대한 개츠비> 편을 들었을 때가 생각났다. 

동명의 영화가 한국에 개봉했을 때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 출판한 세 곳의 출판사, 세 명의 번역가는

"누구는 오역을 했다, 누구는 의역을 했다, 누구의 번역은 재미가 없다"는 식으로 심한 비판과 경쟁을 했다고 한다.

상당히 민감한 주제라 전 세계 번역가들이 모이는 학술회에서도 '의역, 축역, 원문에 가까운 번역 중 어떤 번역이 더 좋은 가'에 대한 논쟁은 금지되어 있다는 게 재미있어서 기억에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뉴스 기사, 특허 문서, 매뉴얼 등 정보를 안내하는 내용은 되도록 원문에 가까워야 하지만,

문학은 어느 정도 현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학이라는 것은 정보 전달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게, 생각하게 만드는 수단에 더 가까우니까. 

 

예전에 어떤 분이 평생 눈이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눈 내리는 장면에 대한 글을 번역할 때

원문 그대로 번역한 후 주석을 달아 '눈'의 사전적 의미를 설명하는 편이 나은지, 아니면 모래, 물, 별 등에 빗대어 설명하여 뉘앙스와 분위기를 전달하는 게 나은지 고민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 

 

번역가이기도 한 하루키의 이 책에도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오역보다 나쁜 것은 '읽기 힘든 나쁜 문장으로 나열된 번역'과 '맛이 결여된 지루한 번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리집에 사는 사람은 함부로 돌은 던져서는 안 된다'는 속담처럼

남을 나무라기 전에 나에게 약점이 있는지 없는지 먼저 체크해보라고 한다.

자기 번역의 오역은 보지 못하고 남의 번역을 비판하지 말라면서. 

 

이 블로그에 중국, 일본 기사를 읽고 번역하며 공부하기로 한 뒤로

번역가분들, 특히 문학이나 영화 자막 번역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졌다. 

한 단락, 한 문장, 한 단어를 번역하기 위해 사전, 책, 웹사이트를 뒤지고 연구하면서 쓰는 사람들.

어떤 사명감이 없으면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고른 한 문장은 '모든 일의 득실은 긴 안목으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