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남자 두 명이 동물원 벤치에 앉아 할재 개그를 주고받는다.
자기가 상대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말하고, 상대가 자기를 욕하면 기분이 나아진다.
상대를 조롱하는 데 그 조롱에서 애정이 느껴진다.
“어떤 때는 자네가 나보다 낫게 여겨지는 때도 있단 말야,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내가 자네보다 못하다고 여겨지지는 않아”
네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널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무의미한 말이라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말동무이기 때문이다.
침착맨(이말년)의 결혼 축사가 떠오른다.
결혼 생활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봐 주고, 나도 그 사람의 행동을 지켜봐 주면서... 무플인 서로의 글에 댓글 한 개 적어주는 것.
두 할아버지는 서로에게 이런 동반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결혼 생활 중에는 스펙터클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두 노인은 굉장한 일은커녕 사소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다.
시간을 보내는 일이 가장 힘든, 무료하고 지루한 나날들.
잠을 잘 수 있는 밤을 언제 오려나, 하며 집으로 돌아가 다시 혼자가 되는
두 사람을 버티게 하는 것은 내일 또 만나기로 한 약속이다.
무엇보다 놀랍고 감동적이었던 건
삶이 무의미하다, 허무하다고 하면서도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그'의 말이다.
“굉장한 어떤 일이 우리가 생각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틀림없어”
“우리의 능력의 한계가 우리의 한계는 아닐 거야”
'고도를 기다리며' 생각한 사람, 나뿐만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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