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보고

그들이 사는 세상 대본집 - 노희경

by 최사막 2023. 1. 14.

몇 년 전에 우연히 드라마를 보고, 기억하고 싶은 대사들이 있어서 대본집을 샀다. 

 

오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닌데 그 사이에 내가 변한건지 

영상과 문자의 다름 때문인지

먼저 본 것과 나중에 본 것의 차이인지

감상이 달라졌다.

 

드라마로 볼 때는 준영과 지오, 윤영과 민철, 규호와 해진의 러브라인이 다 잘 이루어지는 해피엔딩을 바랐다. 실제로도 그렇게 끝난 셈이다. 

 

그런데 책으로 읽으니 준영과 지오가 참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준영이는 준기와 지오 사이에서, 지오는 준영과 연희 사이에서 구질구질하다.

 

준영과 지오는 같은 직장에 다니니

헤어져도 마주치게 되고, 번갈아가며 미련을 표시하고, 동료가 됐다가, 다시 만나고...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15화에서 준영이 전전 남친 준기를 만나고, 지오가 전전 여친 연희를 만날 땐.. 

미련이 남은 듯한, 상대가 날 잡아줬으면 하는 듯한,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는 듯한 장면이 나올 땐...

 

딱히 연결 고리도 없었던 '전전 연인'을 '전 연인'과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만나는 이런 장면을 굳이 넣었어야 했나 싶었다. 

 

그리곤 16화에서 준영과 지오가 결국 재회하고 예전의 상처들은 모두 잊었다는 식으로 즐겁게 끝나는 게 이상했다. 

 

얼마 전까지 지오는 준영에게 '넌 쉬운 여자야'라고 (여러 번) 말했고, 

준영은 자기랑 헤어진 후에 바로 연희를 만나는 지오를 직접 목격했다. 

지오가 얼마나 대단한 우상이길래, 지오한테 얼마나 중독됐길래 이런 것까지 다 용서해가며 준영이가 지오를 만나야 하는지... 

 

준영이도 알고 있잖아. 

준영: (지오에게) 선배 너는 너만 기분 좋음, 니 앞에 있는 내가 어떤지는 전혀 아랑곳이 없어. 옛날에 나랑 헤어질 때도 선배 넌 그랬어. 이제야 다 기억이 나.

 

지오도 초반에 이런 말을 했었다. 

지오: 그래도 성급해선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일은, 지난 사랑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다.

 

그런데 지오는

연희와의 사랑에 대해 충분히 반성하지 않은 채 준영을 만났고

준영과의 두 번째 이별에서 성급했고

준영과의 사랑에 대해 충분히 반성하지 않은 채 연희를 만났고

또 성급하게 준영에게 입을 맞춘다. 

 

대본에서 이 두 사람은 해피 엔딩으로 읽히지 않았다.

 

머지않아 헤어지고 결국 둘 중 하나는 방송국을 떠나고 

준영은 준기도, 지오도, 수경도 아닌 다른 사랑을 하고, 

지오는 연희 아니면 다른 사람과 만날 것 같다.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차피 비극이 판치는 세상, 어차피 아플 대로 아픈 인생, 구질스런 청춘,

그게 삶의 본질인 줄은 이미 다 아는데, 드라마에서 그걸 왜 굳이 표현하겠느냐.

 

 

그런데 나는 누가 봐도 다시 만나서는 안 되는 두 사람인데, 억지 해피엔딩을 위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선으로 두 사람이 재회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로 볼 때는

송혜교(준영)와 현빈(지오)의 얼굴이 개연성이라 둘의 해피엔딩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나? 

 

책으로 보니까 준영도 지오도 진짜 별로다...

 

 

그들이 사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