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가 탈진실의 의미, 시작과 흐름, (책이 출판된 2019년까지의) 현상을 정리하여 쓴 글이다.
탈진실(Post-truth):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
(옥스퍼드 영어 사전)
*Post는 시간 순서상 '이후'라는 뜻이 아니라 진실이 무의미할 정도로 '퇴색'되었다는 의미다.
저자는 2016년의 브렉시트 투표와 미국 대선에서 난무한 거짓말을 예로 들며 이제는 사실과 진실이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임을 지적한다.
탈진실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우월주의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우월주의를 장착한 사람들은 충분한 근거가 있든 없든 자신의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애쓴다.
지지자들이 실제 증거보다는 어느 편에 속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면 '사실'은 '의견'보다 아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근거도 없는 가짜 정보와 거짓말에 쉽게 속고 선동되는 인간의 특성으로, '인지부조화', '집단 동조', '확증 편향'을 들고 있다.
외계인의 침략으로 지구가 종말할 것이라고 주장한 사이비 '시커스' 교인들이 종말을 예측한 날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자신들의 믿음과 기도로 외계인의 의지를 막아내고 세상을 구했다고 믿어버린 것처럼. 제삼자가 보기엔 바보같지만, 실제로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인지부조화를 겪는다는 게 무서운 사실이다. 의도적 합리화, 정신 승리, 럭키비키...
인지부조화를 겪는 사람은 자존감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불안감을 줄이고자 한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진실에 맞추기보다는 비합리적이게도 자신의 믿음을 감정에 맞추려고 한다.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전통 미디어와 주류 언론이 쇠퇴하고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주목을 받으면서 이제는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마음껏 전파할 수 있다.
책에 소개된 초등학교 5학년 대상 가짜 뉴스 대처 교육:
1. 저작권 확인
2. 여러 출처를 통한 확인
3. 출처의 신뢰성 평가(예: 충분히 오래 인정받아 온 출처인가?)
4. 정보 게시 일자 확인
5. 주제에 대한 작성자의 전문성 평가
6.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일치하는지 확인
7. 현실성 있는 내용인지 의심
즉, 끊임없는 검증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쁘다바빠 현대 사회에서 누가 이렇게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검증하려고 할까? 출처, 출처의 출처, 최초의 출처를 찾아내는 건 어렵고 번거롭다. 이젠 글을 읽는 것보다 숏폼을 넘기는 게 훨씬 익숙하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해야 한다는 생각은커녕, 모든 미디어, 심지어 팩트 체크 기관도 신뢰할 수 없는 혼란무지불신의 상태가 계속되겠지. 결국 많은 사람이 자기가 믿고 싶은 걸 믿을 것이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시의 약 90%가 트럼프를 비난하는 데 집중되어 있어서 지루하고 책 자체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 가짜 뉴스가 판치는 사례는 정치 분야가 아니어도 수두룩하니까 다양한 예시를 들었다면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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