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 완전 미친놈이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미친 게 확실하다.
일단 작업량이 미쳤다. 20년간 장편소설 74편에 단편소설, 스케치 등을 썼는데 그 와중에 많은 작품을 16번까지도 고쳤다. 한 작품의 최종 인쇄본이 200쪽일 때 교정쇄까지 합친 분량은 2,000쪽에 달했다고 한다. 완성된 작품도 수도 없이 고쳤다. 남들이 다 자는 시간에 커피를 주유하며 이어지는 발자크의 창작 노동과 교정 루틴은 읽는 나까지 숨이 막힐 정도다.
구상력도 미쳤다. 그가 탄생시킨 인물 중에서 무려 460명이 한 작품이나 사건에서만 등장했다 사라지지 않고 여러 작품에 거듭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커다란 세계를 이루고 있다. 사실적이고 세부적인 인물과 사건, 주제 하나하나가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그려져 있었다. 그의 짧은 생애가 허락하지 않은 <인간희극>의 완전체 모습은 오직 발자크만 알고 있다.
그는 한 세계를 만들어냈지만 세상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발자크는 돈의 노예였고 글쓰기의 노예였다. 소설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돈 좀 벌어볼까 하면 가차 없이 떡락해버리는 마이너스의 손... 출판 사업, 인쇄소, 땅투자, 광산, 목재, 말년의 골동품 투자까지(골동품에 대한 허상적 광기는 황당무계할 정도). 하는 것마다 망해서 빚만 생겼고 그 빚을 갚느라 글을 써야 했다.
신분 상승과 재산 증식 욕구는 많은 사람에게 있지만, 발자크는 이 욕구를 실현하려는 의지력이 미쳤다. 부자에 귀족 여자라고 하면 얼굴을 몰라도 사랑에 깊이 빠져버리는 사람. 그래서 그는 한스키 부인이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야 하는 자발적 노예가 된다.
이 평전에서 한스키 부인이 발자크보다 발자크의 편지를 더 좋아했고, 발자크보다는 딸이 우선이었고, 결혼으로 애를 태우다 그가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승낙하고, 시어머니를 무시한 것을 비난하듯 쓰고 있는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한스키 부인의 재산과 신분 때문에 흐린 눈을 하고 하스키 부인을 변호한 것도 발자크의 선택이다.
그리고 발자크는 미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여기저기 빚지고, 툭하면 은신하고, 도망가고, 수시로 돈 얘기 하고, 돈 많은 여자 소개해달라 하고, 출판사에는 거짓 흥정이나 하고, 진중한 편지는 특정 여자들하고만 주고받는 데도 그의 주변에는 그를 도와주거나 살피러 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심지어 끝까지 남은 친구가 빅토르 위고...
평생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살았지만 뭘 해서든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무모할 정도의 낙천적인 성격. 이 책에서는 '너무나도 지나쳐서 전염될 정도의 유쾌한 기분상태'라고 쓰고 있다. 그리고 대인배 같은 면모도 보인다. 발자크는 출판계, 언론계, 정치계 등 조직에는 반발했지만 개인을 공격한 적은 없었다. 다른 사람의 걸작을 시기하지도 않았다. 그건 발자크 안에 계획된 풍요로운 작품들과 그의 자신감, 확신 때문이다.
발자크의 허무맹랑한 상상, 공상, 망상은 그에게 지독하고 끔찍한 현실을 안겨주었고, 그래서 더더욱 망상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발자크는 그 망상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위대하게 남겼다. 하얗게 불태운 인생이란 건 발자크의 삶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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