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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고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 주경철

by 최사막 2023. 2. 27.

내가 서점에서 고르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누군가가 읽고 리뷰를 썼다.

마침 세계사에 정통한 사람이라 책의 내용을 시대 배경에 비추어 설명해준다.

그래서 아주 유익한 책이다. 

 

여기에 소개된 책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인간 세상은 지독할 정도로 차별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친근한 우화를 쓴 이솝은 알고 보니 노예 출신으로, 그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는 권세를 누리는 소수의 사람과 가난에 시달리는 다수의 서민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이솝 우화>가 우리가 흔히 아는 버전이 된 것은 번역 출판하면서 도덕주의자들이 심하게 각색했기 때문이었다.

 

푸시킨의 '대위의 딸'과 스탈 부인의 '코린나-이탈리아 이야기'가 말하고 있는 내용은 이렇다.  

 

러시아에서 농민의 반란이 반복되었지만 농민들의 처지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여성들의 관점에서 볼 때 프랑스 혁명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심지어 허버트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에서 주인공이 서기 80만 2701년에 목격한 세상도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로 구분되어 있다. 지상 사람들은 연약하지만 아름다운 존재, 지하 세계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생산만하는 사회가 되었다.

물론 이 소설에서는 지상 세계 사람들이 지하 세계 사람보다 더 나은 것처럼 나오지 않는 데, 그건 지상 세계 사람들의 지능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지적 능력이란 변화와 위험과 어려움을 통해 얻어지는 자연의 산물이다. 주위 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생명체는 다만 완벽한 기계에 불과하다.

변화나 변화의 필요성이 없는 곳이라면 지능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 커다란 문제나 위험에 맞서야만 그 생명체는 지능을 소유할 수 있다. 

 

차별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는 곡물과 과일이 넘쳐나는 땅 캘리포니아에서 

대기업과 지주들은 잉여 농산물이 빈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잉여 농산물을 폐기해버렸다. 

 

이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총, 균, 쇠'가 떠오른다. 

캘리포니아의 지리적 혜택은 '주어진 운과 복'인데 인간은 그것을 나누고 가르며 밟고 올라서는 데 이용한 것이다. 

 

기아(hunger)와 분노(anger)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했다.

이 배고픔은 즐거움과 안정된 삶에 대한 굶주림이었다.

좀 더 성장하고 일하고 창조하고 싶은 몸과 마음이었다. 

 

다음으로는 차별과 증오의 절정. 살아 있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 홀로코스트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프리모 레비. 그리고 

이 책에는 안 나오지만 역시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생존자'를 쓴 테렌스 데 프레.

두 사람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40년 전에 아우슈비츠에서 이미 죽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글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대인이라고 다 선량한 피해자가 아니고 폴란드인이라고 다 나치 협력자는 아니다.

유대인, 폴란드인, 독일인에 대해 일률적으로 전형성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역사란 개별적인 인간의 경험들이 뒤섞여 모인 복잡다기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맨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역시 가난과 압제 속에서 피를 팔아 가족을 살리는 '낮은 계급' 가장의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 주경철 씨는 '우리 역시 허삼관이 살아온 그 시대만큼이나 애달프고도 기괴한 시대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다'라고 했지만, 훗날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2'가 나온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존재하는 차별과 혐오도 다양한 책들로 소개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