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이 일반적이 중국인의 입장에서 쓴 글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책의 결론을 먼저 적어둔다.
20세기에 중국이 겼은 만큼의 가혹한 역사를 견뎌낸 국가는 없었으며, 지난 두 세대 동안에 중국이 이룩한 만큼의 성취를 이뤄낸 국가도 없었다. 그런 성취는 세계의 존경을 받을만하다고 중국인들은 생각하며, 교역 파트너들과 풍요로운 세계를 공유하고자 하는 중국의 바람은 이뤄질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 그리고 류큐,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를 괴롭힌 식민지와는 달리, 이 약소국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이익을 준 중국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먼저 중국과 일본의 관계.
일본은 중국에게 조공을 바치고 중국의 인정을 받던 지위였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를 지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만주국을 거치면서 중국이 스스로를 '일본의 약탈 관행에 따른 희생자'로 생각할 만큼 입장이 바뀌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후 중일전쟁이 종료됐고, 중국과 일본은 이제 경제적으로 경쟁하는 관계에 있다. 일본이 표면적으로는 미국과 우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미국의 지시를 따라야만 하는 불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류큐에 대한 일본의 지배에 대해서는 청나라가 류큐의 타이완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일본이 영국의 힘을 이용해 류큐에 대한 주권을 얻었다고 말한다. 특히 류큐인에 대한 일본인의 차별 행위는 유럽에서 유대인을 차별한 것과 유사하게 보인다.
현재 오키나와가 도쿄 중앙정부로부터 하찮은 대접을 받으면서 미국 군사시설에 대한 부담을 과도하게 떠맡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다. 오키나와에서 미군들이 벌인 만행은 지금도 일본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오키나와인들은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미국인들과 조우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진정한 주권과 평화를 누린 적은 중국과 관계를 맺고 있을 때뿐이었다.
베트남, 필리핀, 말레시이시아(+싱가포르) 챕터는 전개 패턴이 매우 유사하다.
1. 본래 세 국가와 중국은 무역이나 통혼 등의 방식으로 우호적인 역사를 맺고 있다.
작지만 성장 중인 중국인 공동체는 술탄국의 대외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세 국가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유럽 국가(베트남 - 프랑스, 필리핀 - 스페인/미국, 말레이시아 -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괴롭힘을 당한다. 세 국가를 점령한 국가들은 막대한 자금 혹은 인력을 낭비하여 식민지화에 성공하지 못한다. 중국을 경계하기도 한다.
중국 미술과 문학은 당대 세계 문화에서 중국 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더 큰 경제 발전을 방해한 것은 베트남을 되찾으려는 중국의 시도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벌인 전쟁이었다.
3. 중국이 세 국가를 동등한 상대로 여기며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익을 가져다준다.
중국인들은 노동을 통해 보탬이 됐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그들은 창의력과 결단력을 발휘했으며, 소규모 무역과 소매업, 주석 노천광산 채굴과 운송은 순식간에 그들의 경제적 전유물이 됐다.
(말레이시아의 지도자) 하티르 모하맛과 나집 라작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 아래 수많은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를 환영했다.
나는 이 책의 목표가 결국 이 문장에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환영하라는 것이다.
옮긴이가 지적했듯,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의 일을 히데요시가 했다고 말하는 명백한 오류가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이 책의 신뢰하기에는 의문이 생기고 객관성은 많이 떨어진다.
그래도 베트남과 필리핀이 프랑스랑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하는 과정 등 몰랐던 부분을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도움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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