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신 사랑 - 엘레나 페란테

 

 

 

유전 시절은 과거시제로 영원히 머물러 있는 거짓말의 공장이다. 

 

 

딸(델리아)이 죽은 어머니(아말리아)의 마지막 날들을 추적하면서 왜곡되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 특히 모녀 사이의 복잡하고도 난해한 감정을 소재로 하는 문학은 많다. 보통은 어머니와 딸이 둘 다 살아서 대치하는 데, 이 소설은 이미 죽은 어머니를 딸이 회상하면서 어머니에 대해 자기가 갖고 있던 이미지를 마주하고 이 과정에서 진실을 발견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델리아의 어머니 아말리아는 바다에서 익사했다. 사망 당시 아말리아는 평소의 후줄근한 옷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속옷만 입고 있었다. 델리아는 어머니의 집에서 예전부터 어머니를 쫓아다녔던 남자 카세르타를 본다. 그가 놓고 간 가방엔 새것 같은 옷과 속옷이 있다. 델리아는 어머니와 카세르타의 관계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자기의 기억을 따라 어머니(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간다. 

  

무명 화가인 델리아의 아버지는 델리아가 어릴 때부터 의처증이 심했다. 아말리아는 누구라도 호감을 느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특히 매력적인 바람둥이 카세르타를 극도로 경계했다. 아버지는 카세르타와 아말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말리아를 죽기 직전까지 때렸다. 델리아는 어머니가 구타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델리아는 가난하면서 집시 여인 그림만 그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경멸하는 동시에 어머니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걱정했다. 아버지가 없을 때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다른 남자로부터 보호하려고 애썼다.

 

델리아는 아버지에 맞고 사는 어머니를 불쌍하게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어머니가 집 밖에서는 화려한 파티에 다니며 언젠가는 돌아오지 않고 자신을 버릴 거라며 슬퍼했다. 

 

(어머니는) 값비싼 장신구로 치장하고 상대방이 누구든 상관없이 자신의 성적 매력을 온몸으로 뿜어내면서 사내들과 일대일로 음란한 말을 주고받고 밀당을 하는 사교계의 여왕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사망한 어머니와 카세르타의 관계를 의심하며 추적하는 중년의 델리아는 자신의 기억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하나씩 발견해 간다. 

 

나의 상상 가운데 실제 현실과 부합하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어린 시절, 델리아는 카세르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아말리아와 카세르타가 같이 있는 것을 보았고, 카세르타의 어린 아들 폴레르도와 어른의 행동을 흉내 냈다. 하지만 폴레르도가 카세르타만큼 어른이 아니라는 것에, 자신은 어머니 아말리아가 아니라는 것에 실망했다. 

 

중년의 델리아는, 다시 찾은 그 가게에서, 밀회를 즐긴 건 카세르타와 아말리아가 아니었다는 걸 기억해 낸다. 그때 그곳에서는, 카세르타의 아버지가 내뱉는 외설적인 욕과 성추행을 온몸으로 당하는 어린 델리아가 있다. 어린 델리아는 그 일을 겪은 후 자기 아버지에게 가서 카세르타와 아말리아가 밀회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어머니와 카세르타의) 은밀한 사랑에 대한 상상이 너무나 생생하고 구체적이어서 나는 평생토록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카세르타가 아니라 내 어머니 아말리아에게서 말이다. 카세르타는 응당 내 것이 되었어야 할 모든 것을 가로채버렸다. 

 

 

델리아가 거짓말을 한 건, 어머니 아말리아의 관심이 필요해서였다. 

아마도 첫째인 델리아에게 두 여동생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된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거기에 어머니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질투, 아버지가 보인 의처증의 전염, 어머니를 남자들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 주변 남자들의 노골적인 태도, 여자 아이의 성적 호기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 같다.  

 

나도 어머니처럼 손가락에 구멍을 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 결핍을 채워주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어머니가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중년의 델리아는 카세르타의 옷에서 발견한 영수증을 보고 어머니의 죽기 전 마음을 이렇게 저렇게 상상한다. 아말리아가 죽기 전 자신에게 전화하여 말한 내용을 떠올리며, 어머니가 델리아의 어린 시절 거짓말을 원망한 것이라고, 아니 어쩌면 카세르타와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다 어머니의 계획이었을 거라고, 아니면 단지 도망치는 중이었을 거라고... 이야기를 지어내 본다.    

 

하지만 이젠 자신의 상상도, 어머니의 진실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