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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고

버려진 사랑 - 엘레나 페란테

by 최사막 2024. 12. 2.

 

갑자기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집을 나간 남편. 올가는 아들과 딸, 개 한 마리와 남겨졌다. 

 

남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요리, 대화, 편지 등을 시도하지만 남편은 매정하게 떠나고, 올가는 부정-분노-포기-우울의 단계를 지나게 된다. 

 

왜 꼭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몰아치는지. 가십만 노리는 듯한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지고, 집전화는 혼선되고, 홧김에 던진 휴대폰이 두 동강 나고, 새로 설치한 현관문의 자물쇠는 열리지 않고, 인터넷도 안 되고, 집에 개미까지 꼬여 살충제 한 통을 다 써버렸다. 아들 자니는 토하고 쓰러지고, 남편이 데려온 개마저 남편의 서재에 토하고 쓰러져 있다.   

 

평소라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올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남편에게 버려졌다는 사실 때문일까?

자존감이 낮아지고 판단력과 기억력이 저하되더니, 결국엔 정신착란 증세를 보인다. 무언가가 조각나고, 조각이 떨어져 나가고, 무너지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미지가 계속된다. 서술이 너무 리얼해서 내 정신까지 어수선해질 정도였다. 

 

“정신을 차리자” “살아남자” “오늘에 충실하자” “뭐라도 하자” “우선순위를 정하다” 

 수시로 다짐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올가의 모습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졌다. 

 

올가는 어릴 적에 봤던 '버려진 여자'를 떠올린다. 남편에게 버려져 올가의 어머니를 비롯한 이웃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여자. 미친 사람처럼 보였던 여자. 올가는 그때 자기는 절대로 저 여자처럼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그 여자가 올가에게 환영으로 나타나서 말까지 거는 것이다. 지금의 올가와 버려진 여자가 자꾸만 오버랩된다.  

 

 

소설에서 의아했던 카라노와 올가의 관계. 

 

자물쇠를 열지 못해 집에 갇히기 전, 올가는 아랫집에 사는 소심하고 나이 많은 카라노를 이용해 자신이 아직 매력적인 여자라는 걸 확인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카라노는 올가의 벗은 몸을 보고도 흥분하지 않고 올가는 굴욕만 느끼고 돌아왔다. 

그럼에도 올가는 정신착란 상태에서 카라노의 도움을 애타게 구한다. 그녀의 정신은 카라노가 찾아오고 자물쇠가 쉽게 열리는 시점부터 다시 회복된다. 공연장에서 카라노의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반전 매력을 느낀다. 카라노의 소소한 도움과 친절이 올가의 추락을 막은 그물이 된다.  

 

이혼을 겪으며 과거에 남편에게 너무 의존해 왔던 걸 실수라고 깨달았으면서, 남편은 물론이고 남자의 '사랑을 가장한 성욕'을 혐오했으면서, 그녀가 다시 안정화되기 위해 다른 남자(카라노)의 도움을 받고 그에게 기대는 결말이 조금은 아쉬웠다

올가가 취직을 하고 전남편을 조금 더 여유롭게 대하게 되는 장면에서 느낀 통쾌함이 사그라들었다.

 

 

마리오(전남편)의 만족감과 기쁨, 날이 갈수록 성공 가도를 달리는 그의 삶을 내 자존감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너무나도 큰 실수였다. 

 

지난 몇 달 동안 그(카라노)가 조심스레 그물이 찢기듯 찢어진 내 주변 세계를 다시 이어 튼튼하게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하니 새삼 그가 고맙게 느껴진다. 

 

 

어쨌든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올가가 새로운 사랑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라, 남편에 대한 올가의 사랑은 버려졌지만, 그녀가 얽매이며 두려워했던 '버려진 여자'는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