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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고

밖의 삶- 아니 에르노

by 최사막 2025. 1. 2.

아니 에르노의 관찰 일기. 

주로 열차, 길, 마트나 쇼핑몰에서 직접 본 것이나 TV 혹은 신문에서 간접적으로 알게 된 소식을 기록하고 있다. 시대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이지만 며칠, 길게는 몇 달간의 공백이 많아서 분량은 많지 않은 편. 당시 프랑스, 특히 파리 모습이 어땠고 어떤 일이 화제가 되었는지 엿볼 수 있는 기록들이다. 

 

 

사람/집단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미술관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사망자들이 아닌 그림에 대해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에르노는  여러 세기 동안 수백만 명의 관람객에게 기쁨을 준 그림과 소수의 사람에게만 행복을 줬고 결국엔 죽을 운명이었을 아이를 대비시킨다. 

 

그밖에도 

관심을 받아야 하는 노숙자 VS 시선을 끌 필요가 없는 부르주아 가족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는, 참수당한 알제리인 VS 결혼 생활, 자녀, 옷까지 우리가 모르는 게 없는 다이애나 왕세자비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노숙자 VS 인간의 보살핌을 받는 3천만 마리의 개와 고양이

해고당한 노동자 VS 돈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주주들

전쟁 난민 VS 거리의 연인들

 

등 A와 B를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에르노는 사실을 기록할 뿐,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불편함이 분명하게 전달된다.   

 

그녀는 이러한 글에 대해 '세상을 말로 옮겨 놓는 단순한 습관'이라든가, '여기에 적는 모든 것이 증거'라고 말한다. 

어떻다 뭐다 평가하지 않아도, 사실 그대로 적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한 일기에서는 시위 장면이 나오는 데, 요즘 읽으니 특히 와닿는 게 있다. 

 

우리 모두 태양과 온화한 날씨를 누리며 저녁 6시까지 사람들로 가득한 인도와 인도 사이를 행진한다. 

바로 그러한 순간에 조차,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거기 있는 것이었고, 존재는, 육체는, 상황의 흐름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이념으로 바뀌었다. 

이념의 실재에 대한 증거는 바로 그러한 존재, 아니 그러한 육체의 부재 - <별 볼 일 없는 인간 서너 명> 혹은 사람의 바다-에 달려 있었다.

그것은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