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를 제대로 보여주는 소설.
3개 부분으로 나뉜다.
1. 주인공이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고, 이후 선생님의 집을 왕래하며 주로 선생님, 때때로 선생님의 아내를 관찰하는 '선생님과 나'.
주인공이 가마쿠라 해변에서 처음 만난 선생님에게서 느낀 '알 수 없는 이끌림'은 도대체 뭘까? 취향이 중년 남성인 건가? 일도 안 하고 사람도 안 만나고 분명하게 말하지도 않고 무뚝뚝하고 차갑고 앉아서 생각만 하고 있는 이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교훈을 얻고 싶다는 것인지. 이러한 궁금증은 결말을 읽고 나서도 풀리지 않았다.
나는 모든 인간에 대해 순순히 젊은 피가 움직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째서 선생님에 대해서만 이런 마음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2. 주인공이 병세가 심각한 아버지 간호를 위해 고향집에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 형, 매부와 지내면서 때때로 취직하라는 잔소리를 듣는 '아버지와 나'.
첫 번째 파트에서 아버지와 장기를 둘 때 아버지를 오락 상대로 부족하게 생각하고, 함께 여흥을 즐기지 않는 선생님에게서는 환락 교제의 친근함 이상을 느낀다는 주인공을 보고, 아버지랑 있는 것보단 벗(같은 사람)이랑 있는 게 재미있는 게 당연하지 뭘 또 선생님이 대단히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의미 부여를 하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와중에...
주인공은 어머니의 재촉에 못 이겨 일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선생님께 편지를 보낸다. 선생님은 답신이 없다. 형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스승으로 생각하는 것을 나무라자 주인공은 아버지나 형이나 모르는 소리 한다고 생각한다. 난 형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3. 선생님이 주인공에게 말해주기로 약속한 과거를 편지로 털어놓는 '선생님과 유서'.
선생님이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되는 이유가 나온다. 학창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숙부가 아버지 재산에 손을 댄다. 이때부터 선생님의 마음에 '불신'이란 것이 싹튼다.
대학생이 된 선생님은 모녀가 사는 집에 하숙하고 있었는데, 동향 친구인 K의 사정이 나빠지자 자기 방 옆에서 함께 지내자고 권한다. (여기서 선생님이 K에게 갖고 있던 모종의 책임감, 역시 이해하기 힘들었다. K가 가족과 의절할 때 원인은 따로 있고 선생님은 말 한마디 거들었을 뿐인데, 의절의 책임이 자신에게도 조금은 있을 거라고 곱씹어 자책하는 성격, 피곤하다.)
선생님은 하숙집 딸을 흠모하고 있었지만 모녀에게도 K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던 K가 하숙집 딸과 조금이라도 '교류'하면, 속으로 질투하고 불안해한다. 모녀에게든 K에게든 자기 마음을 털어놓을 기회가 있었지만 혹시 거절당해 체면을 구기게 될까 봐 용기를 내지 않는다.
만일 아가씨가 저보다 K에게 마음이 기울어 있다면 저의 사랑은 입에 담을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결심했던 겁니다.
어느 날 K가 선생님에게 와서 하숙집 딸을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이후로 선생님은 집안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 의심하고 괴로워한다. K가 아직 모녀에게 마음을 자백하지 않은 것을 알고, 선생님은 부인에게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선수 친다. (음침)
선생님이 K에게 이를 고백하는 것을 망설이는 사이에 부인이 K에게 선생님과 딸이 혼인할 거라고 말해버린다. 선생님은 K에게 변명하기로 하지만, 그전에 K가 자살한다. K가 남긴 유서는 선생님을 원망하는 글이 아니라 자신의 약한 결단력과 어두운 미래를 한탄하는 내용이었다. 혹시나 자기를 비난하는 내용일까 걱정했던 선생님은 자기 체면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결국 선생님은 하숙집 딸과 결혼했고 K와 있었던 일은 비밀로 간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죄책감은 커져만 가고, 선생님은 주인공이 고향에 내려간 사이에 이 유서만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K에게 용서를 구할 기회, 용서를 받을 기회는 사라졌고, 아내와 장모에게 K에 관한 사실을 고백할 용기는 없다. 끝까지 선생님을 탓하지 않고 자기를 낮추었던 K는, 비록 아가씨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지만(고백했으면 잘 됐을지도?)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 반면 선생님은 흠모해 왔던 아가씨와 결혼하게 되었지만 죄책감만 가득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친 것이다.
이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주인공이, 그래도 선생님을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속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팔을 벌려 안아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데, 도저히 공감도 이해도 안 됨... 내가 보기엔 음침하고 음흉하고 소심하고 겉과 속이 다르고 자기의식만 가득한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참... 알 수 없는 마음이다.
'책보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투명한 힘 - 캐슬린 스튜어트 (0) | 2024.10.26 |
---|---|
세금의 세계사 - 도미닉 프리스비 (7) | 2024.10.18 |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11) | 2024.10.05 |
프로젝트 헤일메리 - 앤디 위어 (4) | 2024.09.23 |
가토의 검 - 김이수 (4) | 2024.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