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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고

<Verb> 01 걷다 Walk -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재단

by 최사막 2024. 11. 8.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데려온 매거진 Verb의 창간호. 

 

동사 '걷다'를 테마로 한 각양각색의 글이 실려있다. 

부록으로 귀여운 스티커랑 '네 생각대로 가도 좋아!'라는 메시지의 책클립도 있고, 한국어와 영어가 병기되어 있어 공부도 된다. 

 

인간에게 걷는 행위가 갖는 의미, 순례자들, 보행약자의 이동, 산책, 걸으면서 만난 세상, 누군가를 살리는 길, 신발, 법보행, 증강현실과 걷기 등 말 그대로 잡다한 글들. 읽다 보면 유용하고 재미있다가, 씁쓸하기도, 먹먹하기도 하다. 

 

여러 글 중 박무늬 님의 '터벅터벅 걷는 존재'랑 정유은, 이관택 님의 '살아+가다'에 실린 불발탄과 의족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터벅터벅 걷는 존재' 중에서는 특히 반려견과 함께 걷기. 

산책을 싫어하는, 겁이 많고 소심한 11살의 반려견 머피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걷기는 '엄마와 함께하는 산책'이란다. 

 

냄새를 맡거나 바깥 구경을 하지 않고 엄마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산책. 머피에게 산책의 의미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가만히 뒤를 쫓아가려니 언젠가는 이 뒷모습이 그리워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괜히 눈가가 시큰거렸습니다. 머피도 그래서 늘 눈물 자국을 달고 사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아이가 생각 나서였을까, 엄마랑 산책한 게 언제였는지 아득해서였을까, 내 눈도 따라서 시큰거렸다. 

 

'살아+가다'는 인도차이나전쟁 때 미군이 비처럼 뿌린 폭탄들로 인해 지금까지 고통받는 라오스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전히 많이 묻혀 있는 불발탄으로 숟가락을 만드는 사람들,,, 쇠구슬인 줄 알고 놀다가 목숨을 잃는 아이들, 그리고 전시된 의족들. 

 

이곳에 남겨진 의족은 불발탄 희생자들의 흔적이다. 끔찍한 사고 속에서 몸과 마음에 닥친 고통이 물화(物貨)되어 남겨진 자국이자, 동시에 생의 의지를 불태우며 희망을 놓지 않았던 용기의 흔적이기도 하다. 의족과 몸이 서로에게 적응할 때까지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대하며 걷는 연습을 했던 지난한 시간이 쌓여 비로소 피해자들의 새로운 이상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숙연해지는 이야기였다.

 

 

 

 

Verb의 02호가 지난달에 나왔다고 한다. 치다(Hit)가 주제라는 데, 의외이기도 하고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