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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고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 개브리얼 제빈

by 최사막 2024. 10. 26.

소외계층, 소수자를 생각하는 소설이다. 장애인, 다른 인종, 혼혈, 동성애자, 빈곤자, 상대적 노인. 

게임을 만드는 남자와 여자의 우정, 사랑, 삼각(사각, 오각) 관계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성장 소설인 듯하지만, 훨씬 심오한 메시지들을 던지고 있다. 

 

샘 메이저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혼혈인 것부터? 미혼모의 아들, 한인타운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조부모가 키운 손자,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는 사람, 하버드 출신, 게임 개발자. 

세이디 그린은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유대인, 유복한 집 막내딸, 어릴 때 언니가 아팠던 것? MIT 출신, 유부남 교수와 불륜, 게임 디자이너.   

그리고 (NPC가 아닌 메인 캐릭터) 마크스 와타나베. 한일 혼혈, 부자, 훈훈한 외모, 배우, 말을 길들이는 자. 하버드 출신, 게임 프로듀서. 

 

이들은 게임을 좋아한다. 게임 세계에선 현실 도피가 가능하다. 오늘은 졌어도 내일은 이길 수 있고, 죽음 후에 무한한 부활이 있다. 첫 번째 생은 A를 선택한 삶으로, 두 번째 생은 D를 선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게임 속 세계에서는 위와 같은 조건으로 나와 너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이치고처럼 백만 번 죽고, 낮 동안 육체가 어떤 손상을 입더라도 다음날 일어나면 말짱해지고 싶었다. 생채기 하나 없는 내일이 끝없이 이어지는 생애, 각종 실수와 살아온 날의 흉터로부터 자유로운 이치고의 삶을 원했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게임이 현실과 달라서 좋지만, 그럼에도 게임 속에 나를 반영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혼혈이면서 장애인인 캐릭터가 없다는 게 아쉽다. 결국 이들은 나와 닮은 캐릭터, 나의 이야기가 포함된 세계관을 만들게 된다.   

 

가끔, <CPH>를 개발하다 보면, 그쪽 세계가 나한테는 더 진짜처럼 느껴져요, 이 세상의 세계보다. 하여간 나는 그쪽 세계가 더 좋아요, 완벽해질 수 있으니까. 내가 완벽하게 만들었으니까. 현실 세계는 마구잡이식 재난과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잖아요, 늘 그렇죠. 현실 세계의 코드에 대해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젠장 하나도 없잖아.”

 

 

동명다인이 등장하는 것도 이 소설의 특별한 점이다. 샘의 엄마, 샘 앞에서 떨어져 죽은 여자, 그리고 마크스의 엄마는 모두 '애나 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설정은 인물들의 연결 고리가 되기도 하고, 세상의 우연성과 운명성을 생각해 보게 한다. 현실 세계라는 게임을 창조한 게임 디자이너가 이 캐릭터, 저 캐릭터에 '애나 리'라고 이름을 갖다 붙인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애나 리의 삶(플레이)은 똑같지 않다. 눈앞에 비슷한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져도, 사람은 각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로 볼 때, 샘과 세이디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게임을 함께 만드는 파트너이고 서로를 제일 잘 안다. 각자 다른 연인을 두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선을 넘지 않는다. 세이디가 샘의 룸메이트였고 이제는 동업자인 마크스와 사귀는 사이가 되자 샘은 질투하고 집착하고 슬퍼한다. 남녀 사이의 우정, 사랑, 남매애 같은 미묘한 감정과 너무 소중해서 망설이게 되는 마음, 일종의 플라토닉 사랑이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난 게임을 묘사하는 장면들이 너무 좋아서 샘과 세이디의 관계에는 흥미가 적었다. 

 

'NPC' 챕터가 슬프고 좋았다. 마크스가 그립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게임 중에 <개척자>는 정말 플레이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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