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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고

시칠리아의 풍경 - 아서 스탠리 리그스

by 최사막 2025. 1. 27.

이렇게 불쾌한 기행문은 처음이다. 

 

최근 읽은 책들에 시칠리아가 자주 언급되어서 시칠리아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다. 그중 <시칠리아 풍경>은 뉴욕의 작가 겸 역사학자가 1900년대 초반에 시칠리아를 여행하고 쓴 글로,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을 받기 전의 시칠리아 모습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골랐다. 

 

사진 자료는 많지 않고 수록된 사진의 화질도 흐릿하지만 1912년에 나온 책이니 어쩔 수 없다. 대신 저자는 화려한 수사로 풍경을 묘사한다. 섬세한 표현들은 소설 도입부의 배경, 희곡 무대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묘사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도 다양한 비유를 통해 묘사한다. 그런데 문장이 너무 길고, 여러 번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애매하고 추상적인 표현들이 많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대담한 곶은 여기저기서 고집스런 산마루를 낮추어 쏜살같이 달리는 기차에게 멀리 아래서 젖은 모래가 가장자리를 은줄로 세공한 황금 낫의 칼날처럼 빛나는 순간적인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한다.

 

 

또 불편한 것은 저자의 은근히 오만한 태도다. 고상하고 돈 많은 미국인과 가난하고 저속한 시칠리아인을 자꾸 대비시킨다. 

 

우리를 더 가난한 구역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구알테리오는 내 말에 그대로 순종하여

농부들은 우리에게...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했다

미국인의 입에는 좀 달다 

점잔은 손님을 태웠다는 사실에 신이 난 마부

무지의 축복을 받은 시칠리아 사람... 가난과 무지는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삶의 원동력인 듯하다

시칠리아 거지가 고약할 걸로 예상했지만, 나폴리와 이탈리아 본토의 그들의 끈질긴 형제들보다는 대체로 훨씬 양호했다. 

이 같은 외적인 가난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정은, 심지어 가장 가난한 가정조차 재봉틀을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1900년대니까... 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불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칠리아 사람들을 이렇게 무시하는 듯 말하면서 좁고 가파른 길을 오르는 마차의 말은 가엽게 여기는, 모순적인 태도도 거슬렸다.  

 

오타도 많고, '이거 번역임'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매끄럽지 않은 번역, 

'여러분'이라고 부르며 독자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듯한 느낌. 

 

다른 시칠리아 책을 찾아야겠다.